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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투자가

16. 셸비 데이비스(Shelby Cullom Davis)

by In the money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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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비 데이비스 인물사진
이미지 출처 : uwcisak.jp

 

1) ‘셸비 데이비스’, 그의 생애

셸비 데이비스(Shelby Cullom Davis)1909,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숫자보다는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30,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러시아 역사를 전공했고 1931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석사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1934년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교(Université de Genève)’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이처럼 셸비 데이비스는 투자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네바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CBS 제네바 지사에서 유럽 특파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셸비 데이비스는 처남이 재직했던 델라웨어 펀드에서 통계학자로 일하며 투자와 연이 닿게 되었고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토마스 듀이(Thomas E. Dewey)’의 연설 작가 및 경제 고문역할을 맡으면서 투자와의 인연을 조금 더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셸비 데이비스는 1941, 당시 일반적인 가격으로 50만 달러가 넘던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원권을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단돈 33,000달러에 사들이게 됩니다. ‘뉴욕증권거래소1953년 이후부터 1,366명의 회원들만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정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으로부터 회원권을 양도받는 수밖에 없었으며 회원권의 양도비용은 한 때 400만 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셸비 데이비스는 단순히 회원권이 저렴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증권시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입니다.

 

셸비 데이비스는 우연한 기회에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인 38세부터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5만 달러의 투자금은 그가 눈을 감기 전까지 약 9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으로 불어납니다. 그는 한 때 포브스 지가 선정한 400인의 부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2) 투자가셸비 데이비스’, 그의 성과

- 보험시장의 투자 -

: 셸비 데이비스는 보험사들이 뜻 밖의 성장기업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합니다. 보험사의 대부분이 평가가치 이하에 거래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높은 이율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보험계약자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생명보험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는 좋은 경영진으로 구성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저평가된 보험사를 선별하여 주식을 매수했으며, 그렇게 보험사에 투자한 셸비 데이비스는 매매 수익률이 134%에 달하는 해도 있었습니다.

 

- 해외로의 투자 -

: 셸비 데이비스는 투자 초기에는 저평가된 보험업계의 대표 종목들을 매수하며 막대한 부를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투자의 눈을 세계로 돌렸으며 일본에서 도쿄 해상화재(Tokio Marine & Fire)’, ‘다이쇼 해상화재(Taisho Marine & Fire)’, ‘스미토모 해상화재(Sumitomo Marine & Fire)’, ‘야스다 해상화재(Yasuda Marine & Fire)’에 투자하여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 후 유럽, 중동, 러시아, 아프리카로 투자를 이어 나갑니다.

 

이미지 출처 : uwcrobertboschcollege.de

 

3) 영혼있는 투자가, ‘셸비 데이비스의 투자관

- 인기 없는 기업에 투자 -

: 셸비 데이비스는 인기가 없고 시가총액이 아주 작은, 업계에서 소외되어 있는 보험사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보험회사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경영진이 있으며 성장한 이력이 있는 저평가된 보험사를 추렸습니다. 이는 벤자민 그레이엄으로 대표되는 가치투자가들의 관점과 맞닿는 것이었습니다. 셸비 데이비스는 벤자민 그레이엄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습니다.

 

- 적절한 레버리지의 활용 -

: 셸비 데이비스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익률을 높였습니다. 그는 '뉴욕증권거래소' 회원권으로 일반 투자자들보다 낮은 마진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그 마진에 지급한 이자는 세금 공제 등 절세 효과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5배나 10배의 위험성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대신 1.5배 정도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레버리지를 활용하며 위험성은 낮추고 수익률은 증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 장기투자 -

: 셸비 데이비스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투자처 중 11곳은 투자초기에 매수한 곳들이었습니다. 그의 포트폴리오 중 성과높은 곳 대다수는 모두 다년의 장기 투자를 염두하고 매수한 종목들이었습니다. 5,000만 달러에 달했던 셸비 데이비스의 포트폴리오는 1970년 대 중반 60%의 손실로 2,000만 달러까지 줄어들었었습니다. 하지만 하락장에서도 꾸준히 가치있는 기업들을 장기간 꾸준히 매수했고 이는 결국 연평균 23.2%의 수익으로 돌아왔습니다.

 

 

셸비 데이비스는 엄청난 투자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적인 투자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그는 투자가보다 자선사업가로 더 유명합니다. 그는 ‘UWC(United World Colleges)’를 통해 전세계 대학교에서 약 10,0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해왔습니다. ‘영혼있는 투자가라는 그의 별명처럼 막대한 부를 쌓은 만큼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아왔으며, 이런 그의 정신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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